비가 온다. 해만 바라보던 해바라기 고개숙여 땅을 본다.
비는 줄 ……………… 같지만 점. 인 것
사랑도 줄 ……………… 같지만 점. 인 것
여러 사랑을 거쳐
줄 ……………………………… 처럼 살아온 내 삶도 사실은 점. 인 것
- P. 40 『점』 중에서
아무리 따뜻해도 입동이 지났으니 겨울의 길목이다. 황금빛 들녘은 을씨년스럽게 비어가고, 스산한 바람결에 나무들이 옷을 벗는다. 책 한권과 마주 앉았다. ...‘아무일 아닌 것 같이’....
비도 사랑도 하나의 점이라는 저자는 점으로 이어진 일상을 하나의 줄로 보여주고 있다. 책은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내게 왔지만 첫 장부터 가슴을 설레게 한다. 제라늄이 놓인 창가 사진은 한참동안 멍하게 만들었다.
저자의 직업은 한의사다. 그는 진료시간이 끝나면 이후의 시간은 온전히 본인만을 위해 보낸다. 서울 북촌 동네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인다던지, 편의점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천천히 걷기도 하다가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런 일상 속의 감정을 담아 그만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아놓은 그의 이야기를 포토 시집 ‘아무 일 아닌 것 같이’에 담았다.
나도 얼마 전 북촌마을을 간 적이 있다. 전철을 타고 안국역에서 내려 찾아간 북촌한옥마을. 서울의 북촌한옥마을은 현대화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과거를 지켜온 도심 속 숨은 보물이다. 전통을 잇는 공방과 아담한 카페, 옛날 정취 가득한 목욕탕과 분식점, 문구점 간판에서 세월의 향기를 느낀다.
그곳 골목은 사람들의 숨결이 배어있고 삶의 이야기가 서려있어 정겹다. 한옥골목은 주민들의 애환이 실핏줄로 번진 추억의 공간이다. 골목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의 체취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골목관광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도심의 마천루와 화려한 거리보다 화장기 없는 진짜 얼굴을 만날 수 있는 게 이곳 한옥북촌마을의 가치가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이 책은 더욱 남다르게 내게 다가왔다.
생각하면 저자의 직업이나, 사는 곳, 여행 등만 보면 그는 타인이 동경하는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동네를 돌아다니다 가만히 먼 산을 보는 그의 모습은 유년시절 내 추억과 마치 흡사하다. 그가 찍은 제라늄과 민들레 사진을 보며 꽃이 피는 걸 새삼 기억한다. 노랗게, 하얗게, 붉게, 심지어 파랗게. 눈 깜박할 새, 아니 내일이면, 피었다 질지도 모를 일, 그러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를 일, 아니 평생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를 일. 꽃은, 내가 멈춰 서서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아무것(의미)도 아니라 하지 않던가.
책장을 덮으며 내 방을 벗어나 조금 걸을 수 있거나 혹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움직이고 싶어졌다. 아니 내가 살고 있는 공간으로의 여행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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