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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삼매경

[서평]작은 기도

by 칠면초 2011. 10. 21.

“살아온 날들의 부끄러움이 노오란 수세미 꽃으로 마음의 벽을 타고 오르는 날/ 가까운 이들로부터 따돌림 받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날/ 사랑의 충고보다는 가시 돋친 비난의 말들로 조금은 상처를 받는 날/ (생략) 쓸쓸한 날이 꼭 필요함을 새롭게 알려주시는 저의 노래이신 주님.”(‘쓸쓸한 날만 당신을’ 중)


쉽고 편안한 시어로 작고 소박한 것들에 대한 사랑과 위로의 시를 써온 이해인(66) 수녀가

맑은 감성을 담은 새 시집 '작은 기도'를 발간했다. 2002년 '작은 위로'와 2008년 '작은 기쁨'에 이어 '작은'으로 시작되는 시리즈의 세번째 시집이라 더욱 뜻 깊다.


이해인 수녀의 시를 접한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가 있었다. “누구나 별이 되는 꿈을 꾼다. 연애가 깊어지면 별을 따다 준다지 않던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별이 되어 가슴 속에 간직되기를 원한다. “친구야/ 네가 너무 바빠/ 하늘을 볼 수 없을 때/ 나는 잠시 네 가슴에 내려앉아/ 하늘 냄새를 파닥이는/ 작은 새가 되고 싶다./ 사는 일의 무게로/ 네가 기쁨을 잃었을 때/ 나는 잠시 너의 창가에 앉아/ 노랫소리로 훼방을 놓는/ 고운 새가 되고 싶다.”


시인은 “사랑할 땐 별이 되고”라는 시에서 어떻게 해야 별이 될 수 있는지를 말해 주었다. 누군가를 진정 사랑할 때 그 누군가에게 별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지금 나는 누구의 별이 되고 있을까? 가을 초입에 들어서면서 다시 이해인 수녀의 시집을 들고 마음이 벅차올랐다.


시인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기도가 갖는 진정성과 삶과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삶에 대한 긍정을 간절하게 노래한다.


"적어도 하루에/여섯 번은 감사하자고/예쁜 공책에 적었다//하늘을 보는 것/바다를 보는 것/숲을 보는 것만으로도/고마운 기쁨이라고/그래서 새롭게/노래하자고……"('어떤 기도' 중)


특히 이번 시집은 이해인 수녀의 유언과도 같은 신작 산문 한편이 실려 눈길을 끈다. 3년 전 직장암 진단을 받고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하는 이해인 수녀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마주하며 삶을 잘 마무리하고픈 마음에서 나온 글들이라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이해인 수녀는 이것저것 물건 정리를 해보고 가상 유언장도 적어보며 상상속의 죽음으로 이별연습도 해봤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어떤 모습으로 삶이 마무리될 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라며, 그래도 행복하게 살았듯 행복하게 떠나고 싶다는 바람을 비쳤다.


특히 시집 끝 부분에 산문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 내가 꼭 하고 싶은 것들'이라는 글에서 수도자로서 삶을 대하는 자세가 진지하게 다가왔다.


정승호 시인은 "해인 수녀의 이 기도집은 기도가 없는 이들을 대신한 눈물의 기도문이며, 기도할 줄 모르는 이들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어머니의 기도서"라며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마음이 가난해 간절히 기도하고 싶을 때, 누구든 이 시집을 펼쳐도 좋다"고 말했다. 그동안 냉담 중이었던 신앙에 채찍을 준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