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해설>
디카시의 정본, 텍스트적 의미
-임창연 디카시집 『화양연화』에 부쳐
이상옥 (시인, 중국 정주경공업대학교 교수)
1. SNS 시대 시인의 포즈
임창연 시인은 1978년 학생중앙문단에 박두진 시인에게 「하늘」, 「별」로 2회 추천을 받았고, 2002년 『좋은 생각』에 디지털 사진전, 2007년 조선일보 사이버신춘문예 디카에세이, 2012 고성공룡세계엑스포 디카시 공모전에 각각 입상했으며, 계간 『시선』으로 등단했다.
이런 이력으로 보아도 알 수 있듯, 임창연은 학생 시절부터 시를 써 왔고, 사진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이는 그야말로 예술가적 시인의 포즈를 보인다. 학창시절부터 시작을 꾸준히 해온 결실로, 근자에 시집 『한 외로움 다가와 마음을 흔들면』,『사랑은 시보다 아름답다』,『아주 특별한 선물』을 상재했으며 사진묵상집 『사랑은 언제나』도 출간하여 그가 단순한 문자시만 쓰는 기존의 시인 개념을 넘어 전방위 예술가적인 면모를 보여 주목을 끈다.
임창연 시인은 창원 지역에서 창연출판사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지역출판사가 출판한 책은 전국 유통망이 없기 때문에 책이 배포가 되지 않아 애로가 많은데, 신생 출판사인 창연은 자체적으로 전국 유통망을 확보하며 매우 공격적으로 영업한다. 그 결과, 창연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책들이 전국서점에 깔리는 것은 물론이고 인터넷 서점에서도 인기를 끈다. 창원 지역이 광역시 수준이지만, 창원 지역 출판사가 전국 유통망을 확보하고 있는 경우는 드문 케이스이고 보면, 창연출판사 대표인 임창연 시인의 역량이 사뭇 돋보인다.
최근에는 가수 온새미가 싱글 2집 ‘꽃꿈’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가운데, 이번 곡이 싱글 1집과는 달리 애절한 보컬로 새로운 분위기와 깊은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곡이라는 평가를 받아 화제를 모았는데, 가수 온새미가 임창연 시인의 시를 가사로 활용했다고 한다.
한편 임창연 시인은 디카시연구소에서 주최하는 ‘디카시가 있는 인문학 이야기’에서 ‘현대인과 스마트폰’이라는 테마로 특강도 할 만큼 뉴 미디어 시대 새로운 소통 방식에 정통해 있기도 하다.
매체 변화에 따라 예술과 문학의 양식도 달라지며 예술가의 역할도 역시 달라진다. SNS로 소통하는 디지털 매체 시대의 시인은 문자 매체 시대의 시인과는 역시 다른 포즈를 보여야 할 것이다.
위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임창연 시인은 시가 어떻게 새롭게 독자와 만날 것인지, 아는 SNS 시대 시인의 포즈를 보인다.
2. 영상과 문자의 제3 텍스트
2004년 내가 디카시라는 신조어로 인터넷 서재에 연재를 하고, 디카시집 『고성 가도 固城 街道』를 출간하며, 디카시 마니아라는 카페를 개설하고, 한창 디카시 운동을 펼칠 무렵에는 지금처럼 대중들의 관심을 끌지도 못하여 미래가 불투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카시의 가능성에 공감하며 동참했던 초기 멤버로 지금까지 변함없이 디카시 운동 중심부에 있는 이 중 한 분이 임창연 시인이다.
디카시는 지금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SNS로 소통하며 순간 포착 순간 소통의 아이덴티를 확보하고 있는 편이지만, 디카시 운동 초창기에는 지금처럼 디지털 환경도 구축되지 못해서, 디카시의 아이덴티를 드러내는 게 쉽지 않았다.
당시 디카시가 기존의 문자시에 어울리는 사진을 조합하는 포토포엠과 잘 구별이 되지 않을 때였는데, 임창연 시인은 내가 주창하는 디카시를 잘 이해하고 디카시의 모범이 될 만한 작품들을 카페 디카시마니아에 다수 올렸다.
아무도
멈추지
못하는
일방통행
-「봄」
초창기 디카시에서 주목을 하였던 것이 이 작품이다. 화사하게 핀 벚꽃 속으로 들어온 ‘일방통행’이라는 표지판이 벚꽃이 표상하는 봄의 속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시인은 벚꽃과 일방통행 표지판이 표식하는 강렬한 메시지를 읽고 에이전트가 되어 봄은 아무도 멈추지 못하는 일방통행임을 언표화했다.
봄은 일방통행으로, 이걸 멈출 수 있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표지판이 지시하듯이 결코 뒤돌아올 수 없는 봄, 그래서 더 귀하고 대단하다. 여기서 봄은 물론 계절로서의 봄을 넘어서는 상징이다. 벚꽃의 순간의 화사한 개화와 순간 조락의 짧은 속성 또한 봄의 상징성을 더욱 강화한다. 가장 소중하고, 아름답고 귀한 것임에도 순간적으로 지나가버리는 것, 봄의 상징성은 무엇일까. 통속적으로 청춘의 봄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이 디카시의 봄은 그것을 넘어선다. 벚꽃이 환기하듯이, 존재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봄이라면, 그것은 너무나 짧은 순간에 끝난다. 지상에서의 생명 자체가 봄이라고 봐도 좋겠다. 영겁의 세월에 비하면 목숨은 봄날의 한때, 한 순간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듯 읽는 관점에 따라 봄은 다른 상징으로 드러난다.
디카시는 시인이 포착한 디카영상과 문자로 구성된다. 여기서 디카영상은 시인이 자연이나 사물에서 포착한 시적 형상이다. 자연이나 사물이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시적 형상을 드러내고 있을 때 그것을 날시(raw poem)라 하고, 그것을 디카로 포착하고 다시 문자로 옮겨 디카시가 완성되는 것일진대, 여기서 디카영상은 사진작가의 그것과 달라야 하며, 문자 또한 문자시와 달라야 진정한 디카시가 되는 것이다.
위의 디카시에서 디카영상이 사진작가의 그것과 다른 측면이 무엇인지, 규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디카영상은 벚꽃이 활짝 핀 봄날에 벚꽃과 일방통행이라는 표지가 어우러져 있는 부분을 클로즈업하여 디카로 포착한 것인데, 이것은 시적 형상으로 드러난 것으로 사진예술과는 다른 국면이다. 이 디카사진 자체만으로는 사진예술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 디카영상은 언술과 만나야 제값을 한다. “아무도/ 멈추지/ 못하는// 일방통행”이라는 짧은 언술 또한 이 자체로서는 문자시로서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러나 영상과 문자가 만날 때 제3의 텍스트가 되어 생명성을 지니는 것이 바로 디카시의 미학이다.
3. 디카시의 아이덴티
근자에 최광임 시인이 머니투데이에 디카시를 연재하여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유수의 시인들의 디카시를 소개함으로써 디카시가 결코 아마추어 동호인의 단순한 시 놀이가 아님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아직도 디카시에 대해 오해하는 시인이나 독자들이 많다. 앞서 지적한 바대로 이미 쓰여진 문자시에 잘 어울리는 사진을 붙인 포토포엠 정도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사진을 소재로 쓴 시 정도로 생각하기도 한다. 거듭 말하지만 디카시는 포토포엠도 아니고, 사진시도 아니다. 인쇄매체 시대 시가 언어예술이라는 관점의 문자시 카테고리를 넘어 멀티언어예술로서 시의 언어 카테고리를 확장한 것이다. 디카시는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감흥(날시)을 일으키는 형상을 스마트폰으로 포착하고 그것이 전하는 메시지를 다시 문자로 재현하여, ‘영상+문자(5행 이내)’가 동일한 지분으로 어우러져 완성된 하나의 텍스트가 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두 가지이다. 뉴 미디어인 멀티미디어 시대의 도래로 소통 방식이 혁명적으로 변화하는 가운데서 시 또한 기존의 문자언어만을 고집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기에, 시 텍스트도 영상을 포괄하는 멀티언어로 시의 언어 카테고리를 확장한 것과 함께, 또 하나는 기존 인쇄매체 시대의 종이미디어로 소통하기도 하지만 손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이라는 하드웨어 안의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로 실시간 시공을 초월하여 쌍방향 소통하는 새로운 시라는 것이 디카시라는 관점이다.
이런 디카시의 아이덴티를 알고 디카시를 창작하고 소통해야 하는데, 아직 디카시를 오독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임창연 시인의 이번 디카시집은 디카시의 정본 텍스트적 의미가 있는 중요한 결과물이다.
활새가
현을 긋고
지나자
가슴을 베인 하늘
-「저물 무렵 」
책들이 젖지 않으려
책장을 조금씩 높인다
비바람 내리치면
공룡 울음소리
서고 안을 가득 채운다
-「백악기 동화」
임창연의 디카시가 정본 텍스트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위의 두 편의 작품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디카시「저물 무렵 」은 도심의 하늘을 전선들이 현을 긋고 지나가는 듯한 저물 무렵의 풍경이다. 도심의 저물 무렵 하늘은 핏빛 노을로 가득하고, 빌딩은 그 핏빛 하늘로 솟아 있다. 누군가 저문 하늘을 향해 활을 쏘아 새처럼 화살이 날아갈 때 가슴을 베인 하늘이 피를 하늘에 붉게 풀어 놓은 듯하다. 디카시의 짧은 언술은 분명 문자시의 그것과는 다르다. 4행의 짧은 언술이 영상과 하나의 텍스트가 되면서 환기하는 제3의 메시지는 저물 무렵의 정서를 환기하는 힘이 그 어떤 문자시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강력함이 두드러진다.
「백악기 동화」는 또 어떤가. 고성 공룡 발자국이 있는 백악기의 암석 지층이 보여주는 것은 인류의 역사를 압축하여 보여주는 책장이고 서고이다. 이 책장에서 백악기의 동화책을 꺼내 시인은 읽고 있는 것인가. 비바람이 쳐서 책들을 적시려고 하면, 책장은 조금씩 높아지고, 공룡의 울음소리는 서고 안을 가득 채운다. 이렇게 아름답고 스케일이 큰 백악기의 동화를 읽은 적이 없다.
위 두 편은 디카시의 매혹을 보여준다. 이런 것이 디카시의 정본 텍스트라 할 것이다. 디카시는 기존의 문자시처럼 착상하고 그것을 시인의 상상력을 극대화하여 며칠이고 고뇌하고 썼다가 지우고 또 쓰고 고치고 하는 것보다는 자연이나 사물이 던지는 순간의 메시지,
그 영감, 착상을 그냥 받아 적듯 단숨에 완성해버리는, 그래서 시인의 상상력은 최소화하고 사물의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스마트폰(디카)으로 찍고 바로 써서 카페나 블로그, SNS로 실시간 소통하는 것이 디카시의 아이덴티고, 이것이 굳이 문자시가 아닌 디카시의 존재 의미고, 가능성이라 할 것이다. 물론, 이건 디카시의 이상이다. 디카시도 순간적으로 사물에서 감흥을 포착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영감의 착상이 곧바로 완결돼야 하지만, 현실은 꼭 모두 그렇지는 않다. 그 감흥을 포착하고 시간이 많이 지나서 순간 완성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디카시는 문자시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앞에서 말하듯이 시인이 억지로 상상해서 쥐어짜내듯이 써서는 극순간성, 극현장성, 극서정성의 디카시를 기대할 수는 없다.
임창연의 이번 디카시집은 디카시의 정본 텍스트가 될 만한 것으로, 디카시의 아이덴티를 잘 드러내는 시집이기에 널리 읽혀져서 디카시가 제대로 이해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차례>
자서 - 9
1부 봄
몸살 - 13
비밀 - 14
봄 - 16
봄맛 - 18
폐사지 - 20
긴장 - 22
그리움이 피다 - 24
봄단장 - 25
찰나 - 26
탈속 - 28
빈 드럼통 – 30
공부중 – 31
벚꽃빵 – 32
얼룩말 – 33
명자 이야기 – 34
지독한 내통 – 36
봄날 – 38
꽃놀이 - 40
2부 화양연화
나비 - 43
화양연화 - 44
침묵의 여름 – 46
등대 - 48
흔적 - 49
우주의 시작 - 50
가로수 - 52
마음의 열쇠 - 53
바다 – 54
가을의 선물 – 55
화양연화2 – 56
가을을 담다 - 58
꽃 아궁이 –60
꽃잎 깨어나다 – 62
은행나무 알을 낳다 – 64
단두대 – 66
화양연화를 열다 – 67
화장지 - 68
3부 저물 무렵
비 오는 날 - 71
저물 무렵 - 72
전설 - 74
꽃 잔 - 76
피해자 - 77
별꽃 – 78
꽃잎의 그늘 - 80
기다림 - 82
삶 – 84
꽃비는 내리고 - 86
가을 - 88
가족사진 – 89
꽃비늘 – 90
열쇠 – 92
로봇팔 – 93
가을 생각 - 94
4부 백악기 동화
패총 - 97
수사중 - 98
백악기 동화 - 100
그림자 - 102
글씨교본 - 104
인사동 - 106
마음을 열다 - 108
인생 - 110
솟대 - 111
책 - 112
시간의 힘 - 113
죄 – 114
걸리버 여행기 – 115
꽃소식 - 116
디카시의 정본, 텍스트적 의미 / 이상옥 시인 – 117
시인의 말 / 임창연 시인 - 128
<임창연 시인 소개>
임창연 시인
부산 출생
「시선」 시 등단
「한비문학」 평론 등단
경남문인협회 회원
마산문인협회 회원
시집 『한 외로움 다가와 마음을 흔들면』
『사랑은 시보다 아름답다』
『아주 특별한 선물』
『꽃꿈』
사진묵상집 『사랑은 언제나』
디카시집 『화양연화』
<편집자의 말>
"디카시는 '언어 너머 시'를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문자로 재현한 시다. 따라서 디카시는 단순한 시와 사진이 조합된 시사진(시화)이 아니다. 디카로 찍은 사진은 '언어 너머 시'다."
- (이상옥 시인)
디카시는 순간적인 사물을 포착하여 5행 이내의 문장으로 만들어지는 시의 한 장르이다.
일반적인 시가 문장으로만 만들어지는 작품이라면 디카시는 여기에다 카메라나 스마트폰 등으로 찍은 영상과 함께 만들어지는 시이다.
일반적인 시는 문장을 시간을 두고 다듬어 문장의 완성도에 초점을 둔다면 디카시는 반드시 사진이 먼저 찍어진 후에 문장으로 완성하여 사진과 시가 함께 어우러지는 형상적인 시이다.
임창연 시인은 오랜 시간 사진과 시를 동시에 갈고 닦은 디카시에 가장 정통한 시인이다.
사진과 시를 통해 디카시에 가장 모범적인 텍스트를 이번 디카시집 ‘화양연화’에서 보여준다.
아무쪼록 이 디카시집이 디카시에 접근하려는 독자들과 디카시를 쓰는 시인 모두에게 좋은 교과서가 되리라 확신한다.
<시인의 말>
디카시는 이상옥 시인에 의해 명명되어진 새로운 시의 장르입니다. 일반적인 시가 순간적인 영감을 정리하여 완성된 문장으로 만들어 풀어가는 것이라면, 디카시는 순간적인 영감을 주는 사물을 포착하는 동시에 폰카메라나 디지털카메라로 찍어서 5행 이내의 문장과 함께 완성시키는 시의 장르입니다. 시는 문장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사진이 필요하냐고 이의를 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렇게 대답해 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미 옛 문인들은 문인화란 이름으로 그림과 문장으로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그것 역시 즉석에서 그림과 문장을 완성 시킨 작품이었던 것입니다. 시의 장르가 학문인가? 예술인가? 의 물음에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당연히 학문보다는 예술에 근접한 창작적인 행위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디카시는 시를 더 예술적 창작으로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디카시는 이제 전문적인 계간 잡지를 발행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디카시집이 디카시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힘을 보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시집 해설과 늘 좋은 조언으로 큰 힘을 주시는 이상옥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표서로 힘을 보태주신 최광임 시인님과 차민기 문학평론가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디카시집이 나오기까지 수고하신 이소정 실장님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2016년 4월 임창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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