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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삼매경

서평-바다의 기별

by 칠면초 2008. 12. 22.

http://blog.yes24.com/document/1198238
김훈 저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바다의 기별….

첫 몇 장을 읽다가 얼굴을 감싸 안았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은 속수무책으로 시간을 가로질러버린다.

 

   

 

초등학교 1학년 8살 때 홍역을 앓았다.

사랑보다 무섭기만 하던 내 아버지. 그 아버지가 막내 딸을 등에 업으셨다.

등에서 다가온 두려움과 포근함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교차하며 눈물을 멈추었던 8 살배기.

 

살면서 가장 힘들다 느낄 때 아버지의 등을 떠올렸다. 가뭄에 땅이 갈라지듯 마음이 피폐해진 올 겨울,

'바다의 기별’은 아픈 곳에 소독약을 부은 듯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야 만다.

 

-아버지를 묻던 겨울은 몹시 추웠다. 맞바람이 치던 야산언덕이었다. 언 땅이 곡괭이를 튕겨내서 모닥불을 질러서

땅을 녹이고 파 내려갔다.(광야를 달리는 말 중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늘 이렇듯 한 겨울에 세상을 등지나보다. 막내딸을 업으셨던 아버지는 몇 해 지나

추운 겨울 그렇게 가셨다.

 

100만부 이상이라는 김훈의 판매부수에 일조했던 나는 그의 필체에 대해 굳어져있었다.  

 

내게 쉽지만은 않았던 그의 소설을 벗어나

에세이라고 하니 솔직한 작가의 내면을 느끼리란 기대는 잠시.

'역시’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바다의 기별’은

엄한 내 아버지였다.

 

칼날 같던 그의 문체는 독자를 감싸려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존재다. 아직은 그의 깊음 속에 스며들기엔 내 향수는

먼지와 같은 버거움이었나보다.

 

‘바다의 기별’이라는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이순신을 우리 앞에 불러놓은 그가 바다로부터 김포 해안의 기별을 들고 온 것이다.

 

난 누구에게나 그랬다. “동해나 남해바다는 두려움이야. 서해바다에 가면 내가 편해지거든”

그런 내게 바다는 멀지만 바다의 기별을 들고 온 김포 해안은 낯익다.

 

두 번째 장에서 풀어 놓은 아버지 이야기.

광야를 달리던 아버지는 김훈 자신이고 오래 전 우리의 아버지다.

내 마음 속 새겨진 시간의 무늬가 급격하게 모양을 바꾸는 순간이다.

 

  

내 아버지의 등이 참 따뜻했었다는 기억을 돌려주기에 충분한 그의 식견들.

에세이를 읽음으로서 작가의 곁에 조금 다가설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고, 소설의 느낌이 아닌 인간

‘김훈’으로서의 깊이를 기대했었던 나는 두 번째 장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엄한 아버지는 막내딸을 업고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울음을 멈춘 딸의 등을 토닥이던 아버지 손길,

김훈은 그렇게 힘들어하는 영혼을 토닥이고 있었다.

어려운 시절을 넘어 온 우리들이 맞은 고비를 잘 견디라고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에도 감동하고 눈물을 쏟아냈던

자신의 여린 내면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바다의 기별'이란 김훈의 산문집은 '밥벌이의 지겨움'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것이다.

올해 예순을 맞는 작가는 13편의 에세이를 통해서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삶과 문학,

시대를 특유의 문체로 이야기한다.

 

딱 한번 읽은 그의 에세이는 김훈을 알기엔 부족하다. 다음 그의 산문집이 나온다면 가장먼저 서점으로 달려가

그의 이야기에 아버지를 떠올리겠단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