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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튀는 언어들은 젊음을 끌어안고 있었다. 책을 읽는 며칠 동안 잠시 과거로 나를 돌릴 수 있어 즐겁기도 했다. 맞다. 소설은 20대를 보내기 위한- 연애백신 소설로 안성맞춤이었다.
‘안녕, 추파춥스 키드’ 제목에서부터 만남으로 시작한 소설은 이별을 예고한다. 성인이 되고나서 돌아보면 우리는 몇 개의 잊지 못할 이별들을 떠올릴 수 있다. 그렇기에 이별의 상처를 통해 이루어내는 성장에 관한 이야기가 남 이야기 같지 않은 이유다.
소설 읽기가 우리의 삶에 대처하는 자세를 조금이라도 준비시켜 줄 수 있다면 최옥정의 첫 번째 장편소설 ‘안녕, 추파춥스 키드’는 연애의 기쁨과 아픔에 대해 대비하게 해준다. 읽기 시작하면서 달콤하고 쌉쌀하며 마지막 장에서 머릿속이 환해지는 느낌의 소설이다.
특히 신촌지역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내게 참으로 특별했다. 신혼을 그곳에서 보낸 나는 손바닥 대하듯 지리를 훤히 꿰고 있는 소설이 반가웠다. 강화 가는 버스는 정말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 그랜드시네마에서 영화를 보던 시간과 신촌복집은 더욱 정겹다. 그 흑백의 간판이 눈에 그려지는 듯 잡혀왔다. 양화대교 아래 선유도 공원의 자작나무는 지금쯤 조금은 자라주었겠지....
이 소설은 두근거리는 기대와 함께 찾아올 연애를 상상하게 하거나 추억하게 만든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독자들은 기쁨과 함께 찾아올 숨 막히는 고통들과 만나게 되고 마침내 그 고통의 극복을 통해 보다 시원하게 트인 눈빛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촘촘하게 묘사된 연애 이야기는 우리에게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만남과 고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우리는 연애의 시작을 피할 수도 없고 그 동반되는 고통들을 피할 수도 없지만 이 모든 상처들이 아물며 하나하나 우리 생애를 이루는 의미의 그물눈들이 된다고 미리 알려주어 겪게 될 어렵고 무거운 일들 앞에 가슴을 펴게 해준다.
소설은 스물여섯 살의 취업 준비생인 희수와 이민으로 뿌리 뽑힌 아픔을 가진 영어강사 대희와의 만남과 급작스런 이별, 극복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두 사람은 우연인 듯이 부드러운 음악처럼 자연스럽고 섬세한 만남을 시작한다. 길을 물어오며 만남을 시작한 연인들.
“여기 두줄로 난 노란색 막대형 보도블럭있죠? 혹시 이게뭔지 아세요?” ---- “이게 시각장애인 점자블록입니다. 나도 며칠전에 알았어요” ---“그러니 시각장애인들은 길을 물을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15P)
그러나 두 사람의 만남은 늘 불완전하고 불안하다. 대희는 희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도 희수의 사랑 앞에 완전히 자신을 내려놓지 못한다. 대희는 끝내 자신이 태어났다가 떠났고 다시 돌아온, 서울의 구체적인 공간에 착지하여 뿌리 내리지 못한다.
희수 또한 한 계절 내내 포옹하고 사랑하면서도 둥지를 틀었다는 정착감에는 이르지 못한다. 독자들의 불길한 예감일수록 잘 들어맞는 것처럼 대희의 떠남은 갑작스럽기만 하다.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오사카로 갔다. 그러나 간사이공항에 그는 없었다. 큰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인파를 뚫고 나왔을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망설인 일은 끝내 예감대로 들어맞았다. 결과적으로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걸 확인하러 일본에 간 꼴이 되었다.
사라진 남자 주인공의 행동은 다 설명되지 않는 채로 남는다. 어쩌면 연애 소설의 대미에서 독자가 기대하는 전형적인 두 사람의 마지막 사연을 이 소설은 친절하게 전하지 않는다.
이렇게 ‘안녕, 추파춥스 키드’의 두 주인공은 이야기 전체를 통해 한 번도 온전히 만나지 못한다.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이별 장면에서부터 이 소설은 성장 소설의 역할을 해내기 시작한다.
갑작스런 파국 이후는 다시 느린 속도로 주인공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이 조금씩 그리고 이야기 속 세상의 모든 곳으로부터 진행되기 시작한다. 에필로그에서는 처음 등장했던 희수 할머니가 다시 등장한다. 처음과 끝이 이어져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랑을 보여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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