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 아치울의 봄 |
이춘미 | 소소리 | 2009/0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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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꽃들이 풍성하다. 이 절기에 수필집 ‘아치울의 봄(소소리)’은 잊었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이춘미 수필집은 편한 사람과 마주앉아 이야기하는 기분이 든다. 단어선택도 쉽고 간결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아치울은 아차산 동쪽 골짜기 가운데 가장 넓고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구리시와 서울시 광장동 간 4차선 도로가 나기 전까지만 해도 60여 채의 집밖에 없던 곳이다. 지금은 수백 채의 집들이 들어서 있지만 아직도 벚꽃과 진달래가 아름다운 예술인의 마을이다.
오래 전 아치울을 찾았던 적이 있다. 4월, 그때 벚꽃도 이렇게 하얀 꽃비를 내리고 있었다. 마을 꼬마 여자아이들은 나무아래서 꽃잎들을 쫓아다니며 놀고 있었다. 하늘거리며 떨어지는 꽃잎들을 향해 연신 뛰어다니지만 안타깝게도 꽃잎들은 아슬하게 손바닥을 비켜서 땅으로 내려앉는다. 간혹 꽃잎이 손바닥에 얹어지면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연신 나무아래 마당을 뛰어다니곤 했다. 봄 아지랑이 같이 기억이 가물가물 해질 즈음, ‘아치울의 봄(소소리)’은 잠시 잊었던 아치울의 벚꽃을 그립게 만들고 말았다.
30여편의 잔잔한 이춘미 씨의 이야기들은 떨어지는 꽃잎을 향해 손 내밀던 아이들을 닮았다. 하늘거리는 꽃잎을 잡은 아이들은 큰 행운을 잡은 듯 무척 만족해하고 기뻐했다. 수필을 읽으며 그 아이들과 같이 나도 행운을 잡은 듯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작가는 매우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있어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마지막 동행’은 미국생활에서 얻은 향수병인 ‘이명(耳鳴)’에 대해 동반자로 표현한다. 미국에서 많은 전문의를 찾지만 결국은 이명의 고통을 ‘마지막 동행자’로 함께 한다는 극적인 반전이 감동을 안겨준다.
-마음을 바꾸니 모든 게 달라 보인다. 떨쳐지지도 않는 내 생의 마지막 동행자와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는 여로를 함께할 수 있게 되었으니 분명 나는 축복 받은 길을 외롭지 않게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행운이 어디에 있을까?- 이처럼 고통이나 외로운 삶이라도 행운으로 받아들이는 작가의 긍정적 삶이 이 수필집의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맑고 섬세한 심정으로 또, 어머니로 할머니로 가족의 끈끈한 정을 드러낸다. 또한 며느리와의 고부간 사람도 다분히 정겹기만 하다.
진솔한 이야기들이 한방울 눈물을 흘리게 하지만 아들과 며느리의 편지를 보며 입가에 웃음을 짓게 만든다. 작가의 작품을 읽다보면 행복한 노후의 필요조건을 갖추었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는 일사으이 생활을 훔쳐볼 수 있음은 ‘어떤 행운’에서 한껏 기분을 들뜨게 한다. 관광버스라는 좁은 공간에서 하루 중에 겪는 일들을 실감나게 잘 그려내고 있다.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식상한 소재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구수한 입담으로 지루하지 않게 하루의 역사를 묘사해 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마음을 끌어안는다.
그녀가 자주 찾는 강원도인 용대리를 추억하며 적은 수필, ‘아, 용대리’는 -나만의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은밀함을 노출시킨 서운함에 울컥 목이 메어온다. 인간들의 오염이라는 것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계곡물들은 그들이 마구 버리는 오욕을 담고 흐른다.-라는 문구처럼 문명의 이기를 빙자해 무참하게 훼손되는 대자연, 자연의 훼손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잘 묘사되고 있다. -또 다시 흰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배낭을 둘러메고 너를 찾을 날이 있을지 모르겠구나.-라는 마지막 부분은 우리가 사는 생의 이유일수도 있다. 가고 또 가다 내 발길이 머무는 곳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이라 생각해 본다.
‘며느리의 남편’은 타국 생활은 체험하지 못한 독자에겐 간접체험으로 좋은 지식정보 역할도 해주리라 믿는다. 나날이 변화되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농촌에서는 대도시로 대도시에서는 선진국으로 오고가는 세월 또한 우리네 일상이라 생각해 본다.
‘부부싸움’은 가정폭력, 부부불화 등을 한국과 미국의 정서와 가치관을 적절히 대비시켜 사회성이 진하게 느껴진다. 이와 비슷한 주제의식을 가진 ‘회초리’는 사랑의 매와 아동학대의 잣대로 비교되는 동서양의 자녀교육에 대해 작가의 생각을 담고 있다.
아치울의 봄은 아치울에서 미국생활에서 보고 느낀 일들을 추억과 더불어 잔잔하게 전달해준다. 외국여행에 익숙하지 못한 독자에겐 간접경험의 지식축적까지 제공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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