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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삼매경

[서평]인생이 묻는다. 내가 답한다

by 칠면초 2009. 5. 6.

 


[ 도서 ] 인생이 묻는다 내가 답한다
양순자 | 열음사 | 2008/11/14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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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기억이다. 허구한 날 구치소만 찾아다니던 무학의 집사님이 있었다. 찬양을 잘하던 그녀는 결혼식 성가를 부르고도 구치소를 찾았다. 그곳에서 누나, 언니, 이모로 통한다며 일가친척이 점점 늘어난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배짱한 번 좋다고 생각했다. 또, 자신이 세상의 정규교육을 통해 배운 바는 없지만 사랑을 전달하는 방법은 이미 박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수년 전, 우연히 신문기사에서 만날 수 있었다. 구치수감자에게 장기를 기증했다는 내용과 양원학교를 다니며 대학 진학을 했다는 실로 놀랄만한 기사였다.

 

양원학교에 강의를 간 어느 대학교수가 그녀 이야기를 듣고는 그의 글을 통해 세상에 알린 것이다. 흔히 신문이나 매체를 통해서만 접하던 이야기가 내 주변사람이었다는 점에 놀라움과 너무도 현실적으로만 살아가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인생이 묻는다 내가 답한다(열음사)’는 추억 속 그 집사님을 떠올리게 했다.

 

책은 자칭타칭 인생 9단이라는 저자 양순자 씨가 이제껏 어디에서도 털어놓지 않았던 사형수들과의 만남과 이별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하루에 한 사람’만 상담하기를 원칙으로 정하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충실했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은 바로 그녀의 친구가 되고 자식이 되고 제자가 되었다. 책에는 그러한 인연의 깊이가 들어 있었다.

 

제목에서 주는 철학적인 질문은 인생9단을 만나며 너무나 평이하게 해답을 얻게 한다. 내게 소중한 인연들에게 빈 의자가 되어주는 것…. 저자에게도 인생은 매일 매일이 새로운 문제와 그에 따른 해답을 구해야 하는 고달픈 삶이기는 마찬가지였음이 동질감을 준다.

 

그녀는 동성애, 가정불화, 결혼과 이혼, 직장생활과 교우 문제, 스트레스 해소법 등이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 해도 당사자에게 위안과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녀는 그것을 우선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이런 생각들은 나를 참 기분 좋게 만들었다. ‘내가 좋으면 뭐든 한다’는 어이없는 내 철학과 비슷하기 때문에^^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개인적이고 현실적이며 단호한 길을 따른다.

 

저자가 30년 세월을 보낸 지금에서야 비로소 고백하는 교도소에 수감된 그들과의 만남과 이별 이야기는, 사형수라는 잊혀진 존재뿐만 아니라 그들을 만들어낸 우리 사회와 우리 이웃까지 돌아볼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생면부지의 낯선 인연과 마주앉아 죽는 그날까지 우리 함께하자고 맞선보듯 우리의 만남은 운명처럼 시작된다. (중략) 사형수가 되기까지 잘못 살아온 한 인간의 실체를 조금씩 조금씩 얘기로 들어가면서 상담사 역시 또 다른 한 인생을 알아간다. 그때 그 곁에 손잡아줄 사람이 한 사람만 있었더라면, 그때 그의 절박한 이야기를 들어 줄 곳이 한 곳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우리는 다 공범일지도 모르겠다고, 안타까워질 때가 너무나 많다. (P93~94)

 

그녀는 말한다. 어떤 일이 닥쳐온다 해도 종국에는 다 지나가게 되어 있다고…, 콧등이 시큰해지는 저자의 위로는 스스로에게 인생을 묻고 대답하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감성만이 흐르는 책은 아니다. 감히 판단자의 입장이 되어 시비를 가린다거나 해서는 안 되는 일임을 저자는 언제나 다짐하곤 한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

나는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음속에서 가장 많이 곱씹고 되새기며 그렇게 실천하려고 애쓴 말도 없다. 그래도 안 된다. 수십 년 세월 동안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실제의 인물을 마주하고 보면, 상대를 위로하기에 앞서 피해자들의 고통이 떠올라 평안한 마음으로 대하기 어려운 때가 많다. (P97)

 

나쁜 짓을 완전히 정리하고 개과천선하여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빙산이 햇빛 며칠에 녹겠는가. 운동선수도 적당한 나이가 지나면 은퇴하듯, 범죄도 왕성한 나이가 있다. 가장 혈기왕성한 시기를 내가 잡고 있어주자 그런 심정이었을 뿐이다. (P117)

 

사형수들을 만나면서 무엇이 정말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사람. 어지간한 일로는 괴롭다느니 힘들다느니 말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람. 저자는 풀어서 풀릴 수 있는 것은 괴로움이 아니며, 참고 기다려서 해결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고 감히 말한다. 책을 덮으며 삶은 내게 주어진 숙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해결해야 할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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