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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드라마 막장인생 막장 코미디 막장정치....'
요즘 자주 오르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막장이라는 단어는 그곳에서 일하는 광부들로부터 심하게 태클을 받았다. 힘들게 일하는 자기들 일터를 안 좋은 곳에 비유할지 말라는 거였다. 이렇듯 막장이라는 단어가 때 아닌 유행을 타며 그 비슷한 ‘채굴장으로’라는 일본 소설이 나왔다.
채굴장은 본래 갱도의 맨 끝을 가리키는 말로, 그 이상 앞으로는 나아갈 수 없는 장소를 뜻한다. 그러니 ‘채굴장으로’라는 제목을 액면 그대로만 해석하자면 뭔가 ‘막장’으로 치닫는 드라마를 예고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일본어에는 ‘날개를 자르다’라는 의미 또한 담겨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어쩔 수 없는 사랑의 끌림과 그것을 접는 마음의 애절함을 동시에 담고 있는 제목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그 사랑의 행위가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 자체로 충분히 관능적이다.” 라고 작가가 말했다고 한다, 아마 이 책에 대한 더할 수 없는 소개라 여겨진다.
책을 받아들고 앉은자리에서 읽어 내려갔다. 읽는 동안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 생각나기도 하고 얼마 전 상영한 ‘맘마미아가’ 떠오르기도 했다. 일본소설인 ‘채굴장으로’는 이렇듯 잔잔하지만 바다를 배경으로 한 연애소설이다. 그것도 남편이 있으면서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유부녀가 주인공인 연애 소설.
이쯤 되면 어느 정도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통속적인 사건이 있을 법한데 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보다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다른 남자에게 자꾸 시선이 가고 마음이 끌리는 것을 한없이 억제하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소설의 주를 이룬다. 성 문제에 한국여성들은 결혼 전 보수적이다가 결혼 후 개방적이 되지만 일본 여성들은 그 반대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이 소설 역시 그러한 일본인들의 성향을 알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소극적인 주인공과는 대조적으로 유부남과 연애하는 걸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니는 동료 교사 쓰키에도 있고, 아흔이 넘은 나이에 음몽(淫夢)을 꾸며 신음하는 시즈카 할머니도 있긴 하지만, 그녀들의 이야기조차 선정적이라기보다는 애틋하고 어딘지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에게 ‘채굴장으로’는 조미료 안 들어간 음식처럼 밍밍하고 싱거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답답하리만치 은근하고 애가 닳도록 애틋한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누군가를 좋아할 때의 그 가슴 저림이 저 먼 곳으로부터 되돌아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책을 덮은 후에도 줄곧 멍해지는 감성은 다른 일을 손에 잡을 수가 없었다. 각, 주인공들의 감정에 공명하여 가슴에 꾹꾹 묻어 두었던 추억들이 떠올라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파국의 결말 없이도 이토록 자극적이 되어 이끌리고, 취하고, 매혹되어 버릴 수 있음을 깨달아 버리게 될 것이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 이노우에 아레노의 힘이 아닐까 싶었다.
결말이 그 사랑의 치열함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비난하는 사랑에 몸을 던지던 혼자 가슴에 담아두던, 언제나 절박한 채굴장에 선 마음 그게 사랑이리라.
채굴장으로의 마지막을 엿보자.
-나는 몸단장을 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크로커스 싹이 나기 시작했다. 그 옆의 흙을 조금 파고 작은 나뭇조각 십자가를 묻었다. “눠 해 늦겠어.” 남편이 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깜박하고 못 심은 구근이 한 개 있어서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일어섰다-(2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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