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삼매경

[서평]사랑은 한걸음 천천히 오는 것

by 칠면초 2009. 6. 15.

 


[ 도서 ] 사랑은 한 걸음 천천히 오는 것 (양장)
안국훈 | 도서출판문화의힘 | 2009/04/13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보기(2) | 관련 테마보기(0)

 

드디어 유월에 섰다.살아있는 것들의 환호성이 푸르게 달려오는 유월, 한때 하늘을 바라보며 나를 돌아본 시절이 분명 있었지만...이제 너무나 현실적인 삶에 난 가끔 몸서리를 치곤한다. 얼마 전 해무리가 졌던 날 오후 노을을 바라보며 한 권의 시집을 열었다.

 

‘사랑은 한걸음 천,천,히, 오는것’ 제목처럼 천천히 시를 읽어가며 나도 시인처럼 진지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볼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시집은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시인의 삶을 아내가 그린 18점의 채색화와 함께 녹아 있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도 무심코 지나치지 않은 시인의 서정성이 부럽기만 하다.

 

‘해맑은 햇살이 창문 두드리면 가슴 두근거립니다 그대 그림자 따라온 햇살 한 줄기 가슴 열고 들어오니 마음 속에 꽃바람이입니다 내가 바람이 되어 그대 안부를 묻습니다 (30p 그대 멀리 있어도)

‘사는 동안 무름 잃지 말라고 마음 흔들리지 말라고 하늘이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꽃잎처럼 향기로운 말만 하라고 들꽃이 진솔한 온몸으로 말 건넵니다’(13P 그대 만나러 가는 길)

 

이렇듯 시인은 주변에서 보는 자연을 우리들에게 속삭이며 전해준다. 그런데 시인이 원자력 연구원이라는 참으로 시인에 걸맞지 않은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 두 번 놀라고 만다. 국내 유일의 연구용 원자로를 연구하는 시인의 사랑과 그리움 삶은 아내가 그려준 채색화만큼이나 차분하다.

 

시인은 나를 사랑하는 것도 남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시인은 시를 쓰면 어머니의 미소를 떠올리고 소중한 이의 얼굴을 그렸다. 그런만큼 시인의 시는 참으로 인간적이다. 수식어가 화려하지 않고 인위적이지 않아 더욱 손길이 간다.

 

‘찻잔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처럼 가슴 따뜻한 사람이 좋습니다 꽃잎 만질 때의 고운 속삭임처럼 느낌이 좋은 그런 사람이 좋습니다 달빛도 고우니 오늘은 그냥 우리 차 한 잔 할까요’(83P 우리 차 한 잔 할까요)누군가 이렇게 속삭이듯 차 한 잔을 권한다면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오늘 이런 차 한 잔이 참으로 그립다.

 

자연을 보고 서정성을 노래한 시인은 아버지를 그리는 ‘빈 지게를 바라보고, 아버지’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게 하고야 만다.

‘용돈 한 번 받아본 적 없어 서운했지만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주던 손길 따스했고 아프면 병원으로 업고 다려가던 너른 등도 든든했다’(118P)

 

어렸을 적 나도 아버지의 등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입학 후 치른 홍역으로 열이올라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막내딸을 등에 업으셨던 아버지.... 살아가면서 그때 아버지 등은 내가 힘들거나 지칠 때 버팀목이 충분히 되었던 걸 기억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하지 않을까 나는 확신한다.

 

시집의 마지막 페이지는 사부곡이다. 이제 그도 청년의 아버지가 되어가며 ‘밤하늘만 보면 그리워지는 당신 내 자식도 나처럼 아버지를 생각하며 고개 끄덕일까요’로 문을 닫는다. 아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