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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속연인

[스크랩] 2009년7월19일 일요일 (내 이름은 칠면초)

by 칠면초 2009. 8. 9.

 

사이버에서 내 이름은 ‘칠면초’다. (이곳에서도 간혹 나를 칠면조로 부르곤 한다 ㅎㅎ)

 

사이버의 기능에 대해 유난히 ‘잡기’로 여기며 고집스럽던 내게 어느 날 후배 기자가 “요즘 기자들 블로그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하며 권유했다. 소식을 전한다는 의미로 ‘…외치다’라고 했다간 내 사는 지역과 내 모습과 내 마음의 넉넉함(?)을 표현한 ‘포동댁'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그 후배가 ’포동댁‘은 내 이미지와 안 어울린다며 형부에게 하나 지어달라고 하라는 과제를 주었다.

 

때아니게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이름 짓기에 골몰했는데, 반짝이는 이름 ‘칠면초’였다. 염전에서 주로 자라는 풀이며 그 이름도 여러 가지로 불리고, 원래는 바닷속에서 자랐다는데 육지로 올라와서도 그 바다를 잊지 못해 소금물을 먹고사는 풀. 1년에 7번의 색이 변한다는 부분에 호감이 갔다. 작고 통통한 모습과 성격이 마치 나와 같다 해서 ‘칠면초’로 이름을 만들고 칠면조라 가끔 불려도 난 칠면초가 정겹다.

 

칠면초가 많은 내가 사는 시흥의 포동 벌판은 아침 안개가 잦다. 아침 안개에 싸인 벌판은 너무 고요해 바라보는 눈길도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곳에 살면 마음이 넉넉해지고야 만다는 곳, 시흥시 포동.

 

여기선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힘이 있다. 세상의 소소한 일들 모두 별거 아니라는 듯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을 좀 더 너그럽게 바라보게 만든다.  석양이 아름다운 날 아파트 마당을 가로질러 나오면 나무다리 소금창고가 있었다. (분명 과거다) 소금창고 앞에 나무다리가 하나 남겨져 있어서 자연스럽게 붙여진 이름이다. 100년 되었다는 나무다리 소금창고. 오래전, 음력보름과 그믐 무렵 밀물이 가장 높아지는 한사리 때에는 그동안 물이 잘 닿지 않는 이곳으로 바닷물이 그득하게 차올랐다고 한다. 물이 차오르면 나무다리를 통해 옛 염부들이 물길을 건너 다녔단다.

 

호기심이 많았던 어린 날, 태양이 궁금해서 오랫동안 태양을 올려다 본 적이 종종 있었다. 강한 태양 빛에 눈이 시려와 눈을 돌려 사물을 보면 강한 태양에 노출되었던 눈은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 그 또한 재미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며 눈물이 질끈 나는 일을 수십 번 겪고는 강한 빛에 더 이상 대항하지 않는다. 그 대신 태양을 바라보지 않고 렌즈를 통해서 슬쩍 숨어서 태양을 맞바라보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카메라 앞에서 햇빛을 받은 소금창고 나무다리는 역광에 빛났다. 맞다. 역광으로 찍은 사진들은 좀 더 역동적이다.

 

소금창고가 자리한 벌판엔 억새아니면 갈대가 끝 간 데 없다. 그것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은 찰랑찰랑 머리를 흔드는 여인의 모습처럼 보인다는 생각도 했다. 비가 오고난 후엔 나무다리 소금창고는 세수를 방금하고 나온 듯 해맑은 얼굴을 하고 우리를 맞았다.

 

세월이 지나며 아름답던 소금창고 나무다리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반쯤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반쯤 무너진들 어떠한가? 무너지면 무너지는 대로 자신을 세월에 맡긴 채 소금창고는 서 있었고 풍경은 그 자리에 남아 있는걸.... 소금창고 옆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붉게 타는 칠면초가 해마다 자라고 있고 구불구불 굽이치는 논두렁은 현기증 같은 미열을 일으키는 곳, 포동. 소생과 소멸이 언제나 공존하고 있는 곳. 그 생명의 윤회를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감동스러웠는지....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3년 전,

소금창고가 어느 건설사에 의해 무참하게 파괴되며 골프장 운운 설이 나돌더니 일요일 공원을 산책하는데, 급기야 공사를 시작하고 있는 걸 보았다. 떨어져 나간 그림조각처럼 풍경을 바라보자 울컥하는 서러움과 분노가 밀려왔다. 소금창고가 없음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갈대밭이 더 가슴을 아프게 한다. 무분별한 건설사의 경제관념에 지역주민이 아닌 한 개인으로 분노가 밀려왔다. 수도권의 허파로 자처하는 시흥시, 자연은 그냥 놔두는 것이 가장 훌륭한 자연보호라 하지않던가. 

 

 

 

출처 : ♥독서클럽♥ 책으로 만나는 상생의 세상
글쓴이 : 칠면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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