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둘레길, 올레길, 늠내길 등 보도여행이 인기다. 각 자지단체마다 트레킹 코스 개발이 유행일 정도다. 지난 가을 강원도의 백두대간과 동해의 푸른 바다를 연결한 ‘바우길’을 조성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강원도하면 유난히 추억이 많은 내겐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고, 정동항을 거쳐 남항진까지 잇는 그 길을 걷고 걸었다. 바우길은 10개의 구간으로 구성해 강릉의 주요 관광지와 천혜의 자연을 도보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워낭’은 그런 후에 만난 책이라 읽는 동안 그 소박하고 친근했던 바우길을 생각하고 사진을 보고 그곳을 떠올리며 책을 읽어 평시보다 2-3배 늦게야 책을 놓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소’와 인간의 백년사를 그려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순원의 작품은 아날로그적이라 더욱 좋다. 작가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빚어낸 작품들은 그 배경이 어디이든 우리가 디지털 시대에 잃어버린 것들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이 책에서도 작가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성장이라는 부분에 집착하는 부분을 엿볼 수 있다. 느릿느릿 대관령 고개를 넘는 노새처럼 아련하고 슬픈 눈빛과 손짓으로 그려낸 ‘워낭’ 역시 성장소설이다.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권할 수 있는 가족 성장 소설이다. 1884년 갑신정변에서 2008년 광화문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의 현장까지 120년 한국근현대사를 주변 배경으로 삼아 소의 눈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 이순원은 강원도 출생으로 고향에 대한 남다른 정을 ‘워낭’을 통해 보여준다. 강원도 깊은 시골, 노비제도가 폐지되든 말든 바깥세상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곳인 우추리 차무집 외양간에 어느 날, 어미와 생이별한 그릿소가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릿소는 차무집 외양간의 큰할머니가 될 흰별소를 남기고 떠난다. 소의 계보를 보자면 그릿소-흰별소-미륵소-버들소-화둥불소-흥걸소-외뿔소-콩죽소-무명소-검은눈소-우라리소-반제기소로 이어지는 차무집 외양간 12대의 내력이 잘랑잘랑 맑은 소리를 내며 바람을 흔드는 워낭처럼 펼쳐진다. 여기에 소를 내 어미처럼, 내 자식처럼 아끼며 살아가는 차무집의 4대에 걸친 내력 또한 아름답게 그려진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바우길과 내가 어린 시절 잠시 살았던 청주를 잊지 못했다. 사무실 책상에서 책을 손에 들었지만 이미 나는 들판위에서 소와 순수한 교감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차무집 가족들이 크고작은 상처를 소들로 인해 이겨내듯, 내 현실의 작은 어려움이 그렇게… 그렇게… 벗겨지리라 기대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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