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스승의 날 즈음에 한 중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스승의 날 기념이나 행사 안내는 없고, ‘공직 비리를 신고하라’는 공고문만 화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교육 현실을 보여주는 듯 해 마음이 짜안해졌다.
지난해 경기도 교육청에서 66만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존경하는 선생님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39.6%가 “있다”고 답했단다. 이를 뒤집으면 10명 가운데 6명은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이런 설문조사를 보더라도 스승과 제자사이의 사랑과 존경이란 가치가 실종 된지 오래다. 대부분 반대한다는 체벌금지로 학생들의 인권은 보호받지만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 사례는 오히려 늘어 ‘막장교실’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참 답답한 교육현실이다. 이러한 때 ‘한 시골교사의 희망을 읽어내는 불편한 진실이’란 부제아래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한 권의 책은 이러한 체증을 확 풀어주었다.
"나는 교육이론가나 학자도 아니고 신실한 교사도 못 된다. 그래서 사회를 분석하고 교육모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내 능력을 벗어난다. 그러나 학교가 얼마나 굴종과 억압의 공간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리고 그 학교가 바로 한국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에 절망하기도 한다. 우리가 이 굴종과 억압을 원한 것은 아니라지만 살펴보면 우리가 초래한 것이듯, 한국사회의 모순 역시 대중 스스로가 만든 것임을 말하고 싶었다. 그 중심에 교육이 있어왔다. 이 책은 이 사태를 늦게 깨달은 현장교사의 고백이기도 하다. " -머리글 중에서-
일선 교사인 저자 황주환은 이 책에서 학교만 이야기 하지 않는다. '아가리'를 열어 학교에서 겪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를 지적한다. 교사가 된 후 한국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이 변하게 됐는가를 말하는 현장교사의 고백서와 같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이야기보다 불편한 말들로 춤춘다."고 말한 책은 손에 들고 단숨에 읽어 내리게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현실은 학생들이 여교사에게 성희롱을 하거나 꾸중하는 교사에게 폭행을 하는 등 학생들의 도를 넘은 교권침해 사례가 잇따라 알려져 충격적이다. 학생들 또한 수행평가, 선행학습, 심화학습, 자기주도형 학습 등 우리시대 때는 듣지도 못한 성적위주 경쟁에 시달려 사제간의 끈끈한 정을 나눌 기회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 황주환은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할 것을 요구한다. 무엇이든 질문을 통해 길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아름답고 말랑말랑한 이야기 속에 감춰져버린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교육이란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어느 순간 질문하는 태도와 방법을 잃어 버린 채 모든 것을 마냥 긍정하거나 ‘뭐 별것 있어’ 하면서 냉소적 태도로 일관할 때가 많다면, 그건 분명 이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책은 중간중간 소제목으로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나를 바꿔준 책들에 대하여”에서는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소개된다. “세상을 비춰 보게 했던 책들에 대하여”단락에서는 루쉰의 ‘아큐정전’, 강명관의 ‘열녀의 탄생’,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가 소개된다. 마지막 부분에 독서노트가 실려 있어 저자가 종종 쓰기도 했던 ‘텅 빈 기호’를 충만하게 채우는 일련의 과정을 소개한고 있다.
작은 책 한 권이 이 사회를 바꾸는 초석이기를 바라며 생각을 더듬어보면, 서두에 적은 학교와 같은 도내 다른 학교의 경우 스승의 날을 앞두고 ‘선생님 존경’ 캠페인에 나섰다고 한다. 선생님 캐리커처 그리기, 선생님께 감사 전화와 문자 보내기, 사제동행 걷기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일회성 캠페인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전국으로 확산되어 실종된 선생님의 권위를 되찾아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다’는 스승의 날 노래가 공허하게 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저자 황주환은 1966년 경북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1994년부터 몇몇 학교를 거쳐 지금은 작은 읍의 중,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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