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녔을 때 고민스러웠던 것들 중에 하나는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이었다. 부모님이냐 아니면 훌륭한 역사적 인물이냐를 놓고 항상 갈등을 느꼈다. 이런 고민 끝에 어떨 때는 부모님이라고 대답했고. 상황이 달라지면 역사적 인물을 꼽았던 기억이 난다. 같은 질문을 지금 묻는다면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친정오빠였다. “항상 나는 네 편이다”라고 말해주던 오빠. 그 오빠가 세상을 떠난 지 이미 4개월이 흘렀다. 과묵한 나무와 같던 오빠. 죽을 만큼 괴로우면서도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까봐, 약한 모습 보이면 낙오될까봐, 힘들다고 하면 주위에서 걱정할까봐, 애써 강한 척, 의연한 척 웃고 있었던 모습을 기억한다.
이러한 현대인들의 삶을 위로하고자 김경집 교수(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가 적은 ‘위로가 필요한 시간’의 책장을 넘기다 보면 항상 자신을 도와준 선생님에게 두 달 버스비를 아껴 700원을 모아 촌지랍시고 드린 어느 교수의 추억담, 뇌사 상태에 빠진 8세 아들의 장기를 다른 환자에게 기증한 아름답고 슬픈 부모의 사연, 장애가 있는 아들을 전동 휠체어에 태우고 강의실을 옮겨 다니면서도 아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음을 기뻐하는 모정…. 읽는 순간 내 주변을 돌아보게 만드는 내용들이다.
저자는 삶을 세 등분으로 나눠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고, 25년은 글 쓰며 살기를 꿈꾸는 인문학자다. 책은 거대담론보다는 소소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객관적 시각으로 그려졌다. 책을 읽는 동안 진정한 위로와 거짓 위로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각박한 세상, 많은 위로를 받기도 했고 누군가를 위로해 주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위로라면 성격에 나오는 ‘욥’이 떠오른다. 살아가며 그 생각은 더욱 자주 들곤 했는데....
성경의 욥기서는 주인공 욥과 그의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느님으로부터 시험을 받아 모든 걸 잃은 욥에게 친구들은 욥에게 고난당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부당하게 고난을 당하는 일은 있을 수 없으니 숨겨진 죄를 회개하라고 촉구한다.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하는 말을 들으면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다. 무엇 하나 그른 것이 없다. 그러나 친구들의 말은 욥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를 못했다. 위로는커녕 오히려 큰 아픔을 전해주었다. 고통을 당해보지 않은 너희가 불행한 내 처지를 비웃고 있다고, 너희는 넘어지려는 사람을 떠밀고 있다고, 너희가 나를 위로할 생각이면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그것이 내게는 유일한 위로라고 욥은 친구들에게 호소를 한다.
고난을 당하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옳은 말이 아니었던 걸 나는 그때 깨달았다. 욥에겐 친구들의 옳은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되었다. 욥에 따르면 고난당하는 자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고난당하는 이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이 책은 그러한 이야기를 조용조용 들려준다. 각박해진 세상, 사람들은 문득 지난 시간 되돌아보면 고마움으로 남는 사람이 있고, 미안함으로 남는 사람이 있고, 아쉬움으로 남는 사람이 있다. 아주 잊혀 떠오르지 않는 사람은 더 많겠지만....
지금 나는 어떤 빛깔과 어떤 걸음새로 나의 길을 가는 것인지요? 나를 키워준 대지 위로, 함께 살았던 이들의 눈길 앞에서 돌아설 때 내 걸었던 걸음은 어떤 모양일지, 내가 빚어낸 빛깔은 어떤 빛깔일지, 내 걸었던 걸음걸음엔 얼마만한 무게 담겼을지.
특히 유모차 이야기 편에서는 세상의 따뜻함으로 마음이 훈훈해진다. 유모차를 가져간 이가 적어 보낸 편지 ‘죄송합니다. 몸이 불편한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나갈 수 없어 염치 불구하고 유모차를 가져갔습니다. 제가 형편이 되지 않아 큰 잘못을 저지르는 줄 알면서도……. 다음 달부터 조금씩 갚아가겠습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용서를 빌 자격도 없네요’
이 책은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눈물이 나도 울지 못하는 사람에게 쉬었다 가도 된다고 다독이고 위로가 되는 지침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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